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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의 무게_홍순관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 괴산에서 있었던 제 4회 한일논생물조사교류회에서 한살림 조합원분이 발표중에 당신이 정말 감동하고 많이 울었었던 노래라며 소개해주셔서 만난 노래다. 영상의 그림도 좋았지만, 노래와 가사가 정말 하나하나 마음에 와 닿았다. 올 가을, 한해 벼농사를 정리하면서 이 노래를 배경으로 활동사진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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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goeunpapa's me2DAY 2009/10/01 13:57 x
제목 : 고은아빠의 생각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먹고 있는 쌀밥… 단 한번도 그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놓치고 사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ㅠ...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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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소통하는 법] 이창현 국민대교수(소통학) “사람과 자연에 대한 배려 뒷동네·텃밭에서 배운다” / 대학사회 개인주의·소비풍조 만연 / 착취 말고 소통하는 지식인 키워야 경향 20090718, 기사보기▶
대학생들이 학교 뒷동네의 사람들과 소통한다면 그곳이 바로 ‘사회학개론’ ‘경제학개론’이 담겨있는 통합적 교육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아스팔트 사이에 있는 작은 텃밭은 학생에게 있어서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환경정책론’ 교실이며 ‘기후변화협동과정’ 이상의 의미를 제공한다. 이렇게 소통을 배운 학생들은 이론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을 착취하고 자연을 착취하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소통은 사회를 보는 눈을 열리게 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의 욕망과 소통하며 바벨탑만을 쌓고 있는 듯하다. 대학 사회내에 만연하는 개인주의와 소비풍조는 대학이 사회와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개인적 소비욕구와 소통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사람과 자연을 착취하는 산업화시대의 지식을 가르쳤던 대학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사회의 미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산업화 시대의 회색지식인이 사람·자연과 소통하지 못하는 지식인이었다면, 생명평화시대의 녹색지식인은 사람·자연과 소통하면서 그들을 배려하는 지식인이어야 한다.
_이창현 | 국민대교수
+ 지난주 수목금, 포항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학교에 들러서 산책도 하고, 류대영선생님을 만나 밥도 같이 먹고, 산책하는 길에 이재영교수님도 만나 잠깐 이야기도 나누고, 서점아저씨네서 하루 신세도 지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한동을 생각하면 글쎄 뭐랄까 마음이 복잡하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곳이자 또 그만큼 아쉬움이 큰 곳이기 때문이다. 20대 젊은 날, 내 작은 그릇을 나름대로 키워주고 풍성하게 채워준 곳이기에 이미 지난 시간에 대해서는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적다. 하지만 요즘의 시선으로 한동을 보면 아쉬움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동대 졸업생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고, 사랑했던 학교를 이제는 너무나 부끄러워하고 아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HANDONG GOD'S UNIVERSITY.'라고 마침표까지 찍어서 대문간에 써붙인 경솔함과 그 뒤에 숨어있는 오만함과 그 뒤를 따라오는 우월감이 첫번째 이유이지 싶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비전을 '선포'하는 것이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말은 그 누구라도, 그 어느 집단이라도 쉽게 사용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드러냈다는 것은 내면에 숨어있는 오만함이 아니고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무슨 이상이든, 무슨 비전이든 선포는 해놓고 겸손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작업을 잠시라도 쉬어버리면, 이미 자신들이 그 비전을 이룬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무리나 집단에서는 더욱 그러기 쉽다. 그러다가 누가 옆에서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떠받들어주기라도 하면 자아도취는 더 심각해지고 만다. 그렇게 집단적인 마취상태에 빠지고 나면 공동체적인 자기 성찰과 회개는 더 어려워진다.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한동대학교는 특별한 학교이다. 하지만 한동대학교만 특별한 학교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대학이기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아주 심각해진다. 건강한 자부심을 넘어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의식에 다름없는 우월감에 빠진 것이다. 여기 저기서 접하는 학교소식에서, 졸업생들 소식에서 그런 우월감이 스며있는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내 자신부터 그런 우월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접하는 소식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나 역시 한동인으로서 가지는 '자부심'과 '우월감'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때로는 일부러 '한동대출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해가 부담스러워서이기도 하고, 우월감을 경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런 마음 한켠에 우월감이 숨어서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부심이냐, 우월감이냐의 문제가 그렇게 대단한 문제는 아닐수 있겠지만, 평생을 따라다닐 문제라는 생각은 든다. 비단 출신대학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한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여러모로 연결된 것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내 자신이 그런 부분에서 좀 더 담담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동에 대한 아쉬움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신문기사를, 묘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들른 한동대 도서관 신문 열람대에서
발견했다. 대학사회내에 만연하는 개인주의·소비풍조를 비판하면서, 대학은 착취 말고 소통하는 지식인을 키워야 한다는 이창현 교수의
글이었다. '대부분의 대학' 대신 '한동대'를 바꿔 넣고 읽으면 딱 내 생각과 다름없었다. '한동대는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의 욕망과 소통하며 바벨탑만을 쌓고 있는 듯하다. 대학 사회내에 만연하는
개인주의와 소비풍조는 대학이 사회와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개인적 소비욕구와 소통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사람과
자연을 착취하는 산업화시대의 지식을 가르쳤던 한동대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아주 명쾌하다. 하지만 그래서 한없이 우울하다.
학교로 돌아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던 울창했던 산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료전지 공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한동의 대학로라고 불렸던, 그래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칠포로 가는 논길은 신항만을 연결하는 도로가 뚫리면서 허리가 잘렸다. 볼품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괴기스러울 정도다. 학교가 있는 흥해에서 빠져나와도 여전히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둘째 낳기전에 큰 맘먹고 나선 여행인데, 아내나 나나 마음 한켠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보고싶은 사람들 몇몇조차 없다면, 다시는 이곳에 발길 돌릴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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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논문과 개인역사,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
개인의 평유역사(또는 임상역사)는 자신의 어제를 더 세심하게 살펴보고, 이해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는 중에 자신과 주변의 이웃들을 찌르고 있는 가시를 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빼낼 수 있도록 돕는 자기치유의 과정이다. 물론 단박에 빠지지 않을, 또는 영영 빠지지 않을 수도 있는 가시들이 있다. 가시란 것들이 한번 뽑아내고 그만이면 좋겠지만, 자신도 알게 모르게 계속 뽑히고 박히고 하는 것들인지라 자신의 가시를 -좀 더 고수가 되었다면 타인의 가시까지도- 그냥 계속 안고 견디며 살아가는 법까지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게 있을까. '평유'에 붙어 있는 '역사'라는 말이 단순히 치유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한편으로 그 이상의 무엇을 더 바랄게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씨줄을 발견하고, 공간의 날줄을 발견하고, 그 위에서 나와 이웃이 함께 펼치는 삶의 향연을 볼 수 있는 눈. 그 눈은 바로 역사를 보는 눈이다. 그 눈은 어제의 뒤틀림을 발견하고 또 그 뒤틀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또는 견디고 사는 지혜를 배우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눈은 평유한 내일을 앞당겨 볼 수 있는 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눈과 가깝게 이어져 있는 손으로 오늘이란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다.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좀 길었다.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자. 창업논문과 개인역사쓰기를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 우선 창업논문부터 살펴보자.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이하 전공부)는 이제 9년차에 접어든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그간에 거쳐간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이전과 같지 않은 방식으로 배우고 가르쳤다. 창업논문쓰기는 역사가 오랜 고등부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전통이지만, 그 논문을 쓰는 방식이나 실습과제와의 연결고리, 방향들은 늘 새로웠고 또 막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창업'논문은 말그대로 내일의 창업을 위한 논문이어야 하고, 2년 간의 인문예술교양 공부와 특히나 논/밭 농사 실습과제는 그 논문을 쓰기위한 하나하나의 디딤돌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괜히 엉뚱하게 낭비하면 그 돌은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창업한 다음에 창업논문에 쓴 그대로 살려면 디딤돌을 잘 놔야 한다. 일반대학에서 소위 논문이라고 하면 주제가 정말 너무나도 미세하다. 그래서 일상의 어디에 가져다 붙여야 쓸모가 있을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쓴 사람의 온기는 커녕 체취를 느끼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설계를 그 논문 쓰는 것만큼의 노력을 들여서 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다보니 박사논문은 라면받침이 되버리거나, 간절히 바라는 어떤 삶-정작 자신은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은 그 어떤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양 착각한 채 입사지원서에 빛나는 한 줄을 장식한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짓거리다. 나는 전공부의 창업논문이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으면 좋겠다. 쓴 사람의 온기가, 체취가 물씬 풍겨나는 그러면서도 일상에 쓸모있는 것들로 가득찬 열매였으면, 항해 지도였으면 좋겠다. 잠시 창업논문 이야기는 접고 개인역사로 넘어가보자. 전공부와 맞물린 개인역사를 시기별로 구분지어보면 1.입학이전의 역사 2.전공부에서 2년간의 역사 3.아직 시작하지 않은 창업이후의 역사,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획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온 삶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크고 작은 여울목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여울목이란 것이 임상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에 지난 해 수업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그래서 나 역시 내 삶의 여울목은 무엇이었을까 고민하였고, 어렴풋이 짚히는 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풀무에서 1년 반 가까이 지낸 지금-단지 최근이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바로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여울목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전에 지나왔던 여울목들은 지금의 길로 이어지는 하나하나의 길목이었던게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입학 이전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울목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학 이전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고 서술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대로 어제의 뒤틀림을 발견하고 또 그 뒤틀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또는 견디고 사는 지혜를 배우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 지혜들을 하나하나 실험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이 큰 여울목, 빠르고 거친 시간과 공간을 지나는 동안 평유한 내일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그리고 실제적인 창업계획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또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다시 땅에 발을 붙여보자. 1학년 봄학기부터 개인 평유역사를 서술하기 시작하는 것은 개념도 부족할뿐더러, 처음 만난 사람들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뭔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시작은 해야하는 것이 맞다. 생각해보니 입학원서에 자기소개서를 첨부해야 했는데, 그 내용 중에 적게나마 지금까지의 경로를 서술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른 동무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 부분에 조금씩 살을 붙이고 세밀하게 다듬어 가는 방식으로 개인역사 쓰기 작업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나중에 다시 가지를 치고, 새끼를 치는 한이 있더라도 1학년 가을학기 후반 즈음에는 서술작업을 일단락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동무들과 얼마만큼의 관계가 두터워졌을 때 그 문을 여는 것이 바람직할지는 여러모로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1학년 가을학기가 좋을지, 2학년 봄학기가 좋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절한 때에 그 문을 연다면 그 순간에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의미 깊은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선생님과는 개인적으로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문을 열고 소통하는 것이 좋을지, 역시나 잘 모르겠다. 이 부분은 아예 감도 안잡힌다. 선생님께 숙제를 넘기고 그냥 넘어가자. 1학년 가을학기 후반에는 개인 논/밭 농사 실습과제를 계획해야 한다. 이 즈음에 입학이전에 대한 개인역사쓰기 작업을 마무리하도록 하면, 창업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좀 더 농익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 않을까? 그래서 그 고민이 개인 실습과제로 보다 밀접하게 연결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농사실습과제는 -특히, 생계와 기술면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아니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2학년 봄학기 즈음이면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뒤틀림을 발견하고 또 그 뒤틀림을 혼자서가 아니라 이제는 동무들과 함께 바로 잡을 수 있는, 또는 서로 견디고 사는 지혜를 보다 진지하게 실험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풀무에서 지내는 2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역사쓰기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2학년 가을학기가 되고, 축제에 접어들면 슬슬 개인 실습과제들에 대한 결과를 정리해야한다. 이 시기에 전공부 1학년 후배들과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농사짓는 분들도 자리에 모셔서 실습과제 결과를 발표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먼길 돌아서 이제 다시 창업논문을 이야기하고, 슬슬 마무리해야겠다. 나는 창업논문이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개인적인 평유역사 한 편 이였으면 좋겠다. 그가 입학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다가, 무엇을 계기로 풀무학교에 들어왔으며-실제로 정말 독특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 곳에서 저마다 경험으로 깨달은 또는 바로잡은 것들이 무엇이며, 이제 앞으로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삶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 농사실습과제를 토대로 이야기하는, 따뜻한 체취와 쓸모있는 내용으로 가득찬 살아있는 논문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창업식날 동무들이 그 논문, 그 에세이, 바로 그 평유역사를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나는 평유역사쓰기를 통해 치유와 전망을 얻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 온전해 지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누군가의 개인적인 치유와 전망, 온전함이 담긴 평유역사는 개인에 머물러있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치유와 전망을, 온전함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2009.05.02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 최문철 평유역사가 수업에서
* 풀무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졸업이라는 말을 창업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풀무학교 과정을 졸업한다고 해서 공부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뜻도 들어 있고,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계속 배워나간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정작 졸업이라는 말은 생을 마감할 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풀무학교 고등부와 전공부에서는 졸업식이 아니라 창업식, 졸업논문이 아니라 창업논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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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수업에서 함께 읽고 난 후 나눈 동무들의 이야기중에 일부와 > 그에 대한 나의 생각
- 고등부의 창업논문은 책 한권 정리하는 느낌. 실제 대학진학, 창업과는 얼마만큼 연관이 있나?
- 논문을 쓴다라기보다 책을 한 권 낸다는 생각으로 | 내 이야기와 과제중점 사이에서의 균형 > 치우칠 순 있어도 누락할 수 없는: 하나로 녹여 낼 수도 있고, 별책부록처럼 넣을 수도 있고 - 개인에게 의미있는 과제, 작업, 논문 > 그게 왜 의미가 있었는지 이야기 할 수 있다면, 평유역사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면 좋겠다.
- 창업논문의 형태를 보다 자유롭게 열어두었으면 좋겠다. > 지당한 이야기다. 난 그저 하나의 틀을 제시한 것 뿐이다. 주제와 방식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그대로 개인의 '창업'논문이니까. - 창업논문의 완결에 대해서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미완의 창업논문, 진행형의 창업논문, 완벽한 계획이라기보다 앞으로 작성할 논문의 토대정도 > 일단락. 완성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이 부담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하지만 미완의 모습으로라도 일단락을 지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함에 대한 부담때문에 시작조차하지 않는 것은 정말 손해다. 어짜피 판단 유보도 선택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리고 아무리 구체적으로 완결한 창업논문이라 할지라도, 이후에 언제라도 고치고, 빼고, 덧대고 할 수 있는 겸손한 자세,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 역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선생님들도 창업논문을, 평유역사를 쓰셨으면 좋겠다. 평유역사쓰기도 그렇고,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는 것도 그렇고, 길, 이 길이 걸어갈만 한 길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이 앞서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학기초에 작성했던 2009년 논/밭농사 실습과제와 논문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남선생님께서도 내가 제안한 방식으로 내 창업논문을, 평유역사를 쓸 것을 강권하셨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어떤 뚜렷하고 구체적인 갈피를 잡은 것이 아니라서 앞으로 계속 건드려가면서 작업을 시작을 해봐야겠다. 우선은 지나온 길을 추리고 살피는 일 - 풀무학교 전공부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추리는 일과,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 안팎으로 발견하는 굵직한 흐름들, 여울목의 형세를 살피는 일을 먼저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내 논/밭농사 실습과제들과의 연관성도 살펴봐야겠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목적과 방식, 다시말해 원하는 삶의 모습과도 얼만큼 그리고 어떻게 겹쳐지는지 살펴봐야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텐데, 지나온 길을 추리고 살피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뚜렷해 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나면 이전에 세워두웠던 계획 - 이미 시작하고 진행하고 있는 논/밭농사 실습과제들에 다시 손을 대고 조정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뼈대까지 건드릴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앞뒤로 보다 구체적인 연결고리들을 찾는 작업은 꼭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논문주제로 생각해두었던 '유기농업활동과 생태교육' 역시 한걸음 물러서서 내가 정말 창업이후에 할 일, 원하는 삶과 겹쳐지는지 진지하게 다시 살펴봐야겠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내 역사를 쓴다는 것에 대해 나는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기합리화, 그렇게 착각한 바가 점점 더 단단하게 굳어져버림 - 그런 오류를 저지를까봐 나는 몹시 두려워했고-그래서 1학년 때 내 임상역사쓰기를 주저했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내 입으로 이미 말했고, 머리로 알고 있듯이 창업논문으로 평유역사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이웃에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앞에서 끊임없이 정직하기를, 간절하기를,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열 수 있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바라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미화하지 않도록 애쓰기,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정직하려고 노력하기, 고정될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글로써) 일단락 맺기, 하지만 일단락 진 매듭도 언제든 번복할 수 있도록 겸손하게 귀를 열고 마음을 열기, 일단락을 맺고 또 번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그러니만큼 신중하게 선택하기/글쓰기 등이다.
** 이 말은 언제부터인가 -20대 초반부터라고 생각한다- 마음 속에서 늘상 되뇌여온 말이기도 하다. '내 자신과 주변의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를, 간절하기를,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열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나에게 평유역사를 쓰는 과정은 이 기도의 연장선 위에 있다.
2009.05.09 평유역사가 수업에서 후기내용 한번 더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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