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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논문과 개인역사,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
개인의 평유역사(또는 임상역사)는 자신의 어제를 더 세심하게 살펴보고, 이해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는 중에 자신과 주변의 이웃들을 찌르고 있는 가시를 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빼낼 수 있도록 돕는 자기치유의 과정이다. 물론 단박에 빠지지 않을, 또는 영영 빠지지 않을 수도 있는 가시들이 있다. 가시란 것들이 한번 뽑아내고 그만이면 좋겠지만, 자신도 알게 모르게 계속 뽑히고 박히고 하는 것들인지라 자신의 가시를 -좀 더 고수가 되었다면 타인의 가시까지도- 그냥 계속 안고 견디며 살아가는 법까지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게 있을까. '평유'에 붙어 있는 '역사'라는 말이 단순히 치유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한편으로 그 이상의 무엇을 더 바랄게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씨줄을 발견하고, 공간의 날줄을 발견하고, 그 위에서 나와 이웃이 함께 펼치는 삶의 향연을 볼 수 있는 눈. 그 눈은 바로 역사를 보는 눈이다. 그 눈은 어제의 뒤틀림을 발견하고 또 그 뒤틀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또는 견디고 사는 지혜를 배우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눈은 평유한 내일을 앞당겨 볼 수 있는 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눈과 가깝게 이어져 있는 손으로 오늘이란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다.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좀 길었다.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자. 창업논문과 개인역사쓰기를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까? 우선 창업논문부터 살펴보자.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이하 전공부)는 이제 9년차에 접어든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그간에 거쳐간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이전과 같지 않은 방식으로 배우고 가르쳤다. 창업논문쓰기는 역사가 오랜 고등부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전통이지만, 그 논문을 쓰는 방식이나 실습과제와의 연결고리, 방향들은 늘 새로웠고 또 막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창업'논문은 말그대로 내일의 창업을 위한 논문이어야 하고, 2년 간의 인문예술교양 공부와 특히나 논/밭 농사 실습과제는 그 논문을 쓰기위한 하나하나의 디딤돌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괜히 엉뚱하게 낭비하면 그 돌은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창업한 다음에 창업논문에 쓴 그대로 살려면 디딤돌을 잘 놔야 한다. 일반대학에서 소위 논문이라고 하면 주제가 정말 너무나도 미세하다. 그래서 일상의 어디에 가져다 붙여야 쓸모가 있을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쓴 사람의 온기는 커녕 체취를 느끼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설계를 그 논문 쓰는 것만큼의 노력을 들여서 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다보니 박사논문은 라면받침이 되버리거나, 간절히 바라는 어떤 삶-정작 자신은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은 그 어떤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양 착각한 채 입사지원서에 빛나는 한 줄을 장식한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짓거리다. 나는 전공부의 창업논문이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으면 좋겠다. 쓴 사람의 온기가, 체취가 물씬 풍겨나는 그러면서도 일상에 쓸모있는 것들로 가득찬 열매였으면, 항해 지도였으면 좋겠다. 잠시 창업논문 이야기는 접고 개인역사로 넘어가보자. 전공부와 맞물린 개인역사를 시기별로 구분지어보면 1.입학이전의 역사 2.전공부에서 2년간의 역사 3.아직 시작하지 않은 창업이후의 역사,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획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온 삶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크고 작은 여울목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여울목이란 것이 임상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에 지난 해 수업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그래서 나 역시 내 삶의 여울목은 무엇이었을까 고민하였고, 어렴풋이 짚히는 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풀무에서 1년 반 가까이 지낸 지금-단지 최근이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바로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큰 여울목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전에 지나왔던 여울목들은 지금의 길로 이어지는 하나하나의 길목이었던게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입학 이전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울목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학 이전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고 서술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대로 어제의 뒤틀림을 발견하고 또 그 뒤틀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또는 견디고 사는 지혜를 배우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 그 지혜들을 하나하나 실험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이 큰 여울목, 빠르고 거친 시간과 공간을 지나는 동안 평유한 내일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그리고 실제적인 창업계획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또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다시 땅에 발을 붙여보자. 1학년 봄학기부터 개인 평유역사를 서술하기 시작하는 것은 개념도 부족할뿐더러, 처음 만난 사람들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뭔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시작은 해야하는 것이 맞다. 생각해보니 입학원서에 자기소개서를 첨부해야 했는데, 그 내용 중에 적게나마 지금까지의 경로를 서술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른 동무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 부분에 조금씩 살을 붙이고 세밀하게 다듬어 가는 방식으로 개인역사 쓰기 작업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나중에 다시 가지를 치고, 새끼를 치는 한이 있더라도 1학년 가을학기 후반 즈음에는 서술작업을 일단락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동무들과 얼마만큼의 관계가 두터워졌을 때 그 문을 여는 것이 바람직할지는 여러모로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1학년 가을학기가 좋을지, 2학년 봄학기가 좋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절한 때에 그 문을 연다면 그 순간에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의미 깊은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선생님과는 개인적으로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문을 열고 소통하는 것이 좋을지, 역시나 잘 모르겠다. 이 부분은 아예 감도 안잡힌다. 선생님께 숙제를 넘기고 그냥 넘어가자. 1학년 가을학기 후반에는 개인 논/밭 농사 실습과제를 계획해야 한다. 이 즈음에 입학이전에 대한 개인역사쓰기 작업을 마무리하도록 하면, 창업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좀 더 농익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 않을까? 그래서 그 고민이 개인 실습과제로 보다 밀접하게 연결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농사실습과제는 -특히, 생계와 기술면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아니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2학년 봄학기 즈음이면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뒤틀림을 발견하고 또 그 뒤틀림을 혼자서가 아니라 이제는 동무들과 함께 바로 잡을 수 있는, 또는 서로 견디고 사는 지혜를 보다 진지하게 실험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풀무에서 지내는 2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역사쓰기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2학년 가을학기가 되고, 축제에 접어들면 슬슬 개인 실습과제들에 대한 결과를 정리해야한다. 이 시기에 전공부 1학년 후배들과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 농사짓는 분들도 자리에 모셔서 실습과제 결과를 발표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먼길 돌아서 이제 다시 창업논문을 이야기하고, 슬슬 마무리해야겠다. 나는 창업논문이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개인적인 평유역사 한 편 이였으면 좋겠다. 그가 입학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다가, 무엇을 계기로 풀무학교에 들어왔으며-실제로 정말 독특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드라마틱한 사연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 곳에서 저마다 경험으로 깨달은 또는 바로잡은 것들이 무엇이며, 이제 앞으로 어떤 삶을 살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삶을 실제적으로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 농사실습과제를 토대로 이야기하는, 따뜻한 체취와 쓸모있는 내용으로 가득찬 살아있는 논문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창업식날 동무들이 그 논문, 그 에세이, 바로 그 평유역사를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나는 평유역사쓰기를 통해 치유와 전망을 얻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 온전해 지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누군가의 개인적인 치유와 전망, 온전함이 담긴 평유역사는 개인에 머물러있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치유와 전망을, 온전함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2009.05.02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 최문철 평유역사가 수업에서
* 풀무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졸업이라는 말을 창업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풀무학교 과정을 졸업한다고 해서 공부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뜻도 들어 있고,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계속 배워나간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정작 졸업이라는 말은 생을 마감할 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풀무학교 고등부와 전공부에서는 졸업식이 아니라 창업식, 졸업논문이 아니라 창업논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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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수업에서 함께 읽고 난 후 나눈 동무들의 이야기중에 일부와 > 그에 대한 나의 생각
- 고등부의 창업논문은 책 한권 정리하는 느낌. 실제 대학진학, 창업과는 얼마만큼 연관이 있나?
- 논문을 쓴다라기보다 책을 한 권 낸다는 생각으로 | 내 이야기와 과제중점 사이에서의 균형 > 치우칠 순 있어도 누락할 수 없는: 하나로 녹여 낼 수도 있고, 별책부록처럼 넣을 수도 있고 - 개인에게 의미있는 과제, 작업, 논문 > 그게 왜 의미가 있었는지 이야기 할 수 있다면, 평유역사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면 좋겠다.
- 창업논문의 형태를 보다 자유롭게 열어두었으면 좋겠다. > 지당한 이야기다. 난 그저 하나의 틀을 제시한 것 뿐이다. 주제와 방식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그대로 개인의 '창업'논문이니까. - 창업논문의 완결에 대해서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미완의 창업논문, 진행형의 창업논문, 완벽한 계획이라기보다 앞으로 작성할 논문의 토대정도 > 일단락. 완성을 전제로 하지만 그것이 부담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하지만 미완의 모습으로라도 일단락을 지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함에 대한 부담때문에 시작조차하지 않는 것은 정말 손해다. 어짜피 판단 유보도 선택이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리고 아무리 구체적으로 완결한 창업논문이라 할지라도, 이후에 언제라도 고치고, 빼고, 덧대고 할 수 있는 겸손한 자세,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 역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선생님들도 창업논문을, 평유역사를 쓰셨으면 좋겠다. 평유역사쓰기도 그렇고, 농사를 짓고 살아간다는 것도 그렇고, 길, 이 길이 걸어갈만 한 길이라는 것을 선생님들이 앞서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학기초에 작성했던 2009년 논/밭농사 실습과제와 논문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남선생님께서도 내가 제안한 방식으로 내 창업논문을, 평유역사를 쓸 것을 강권하셨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어떤 뚜렷하고 구체적인 갈피를 잡은 것이 아니라서 앞으로 계속 건드려가면서 작업을 시작을 해봐야겠다. 우선은 지나온 길을 추리고 살피는 일 - 풀무학교 전공부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과정을 추리는 일과,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 안팎으로 발견하는 굵직한 흐름들, 여울목의 형세를 살피는 일을 먼저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내 논/밭농사 실습과제들과의 연관성도 살펴봐야겠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목적과 방식, 다시말해 원하는 삶의 모습과도 얼만큼 그리고 어떻게 겹쳐지는지 살펴봐야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텐데, 지나온 길을 추리고 살피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뚜렷해 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고나면 이전에 세워두웠던 계획 - 이미 시작하고 진행하고 있는 논/밭농사 실습과제들에 다시 손을 대고 조정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뼈대까지 건드릴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앞뒤로 보다 구체적인 연결고리들을 찾는 작업은 꼭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논문주제로 생각해두었던 '유기농업활동과 생태교육' 역시 한걸음 물러서서 내가 정말 창업이후에 할 일, 원하는 삶과 겹쳐지는지 진지하게 다시 살펴봐야겠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내 역사를 쓴다는 것에 대해 나는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기합리화, 그렇게 착각한 바가 점점 더 단단하게 굳어져버림 - 그런 오류를 저지를까봐 나는 몹시 두려워했고-그래서 1학년 때 내 임상역사쓰기를 주저했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내 입으로 이미 말했고, 머리로 알고 있듯이 창업논문으로 평유역사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이웃에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앞에서 끊임없이 정직하기를, 간절하기를,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열 수 있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바라는 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미화하지 않도록 애쓰기,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정직하려고 노력하기, 고정될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글로써) 일단락 맺기, 하지만 일단락 진 매듭도 언제든 번복할 수 있도록 겸손하게 귀를 열고 마음을 열기, 일단락을 맺고 또 번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그러니만큼 신중하게 선택하기/글쓰기 등이다.
** 이 말은 언제부터인가 -20대 초반부터라고 생각한다- 마음 속에서 늘상 되뇌여온 말이기도 하다. '내 자신과 주변의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를, 간절하기를,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열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나에게 평유역사를 쓰는 과정은 이 기도의 연장선 위에 있다.
2009.05.09 평유역사가 수업에서 후기내용 한번 더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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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에서 생활하고, 일하고, 공부하며 지내는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여름이네 농사일기>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블로그에서 같이 쓸까, 따로 만들어서 기록할까 고민하다가 따로 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쓰다가 더 좋은 방식이 생각나면 변경하려고 합니다. 여기 블로그에 글이 올라오는게 원래도 뜸했지만, 뜸해도 너무 뜸해서 게을러도 너무 게으르다고 오해해주신 분들(이 있다면 또 고마워해야겠죠? ㅎㅎ)에게 변명도 할겸 소식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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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가난하고 행복하게, 소박하고 아름답게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삶의 여러 시기마다 인생의 방향을 담은 글귀를 만들곤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는 제가 고등학생 때 새해를 맞이하면서 마음을 다지며 만들었던 글귀입니다. ‘가난하고 행복하게, 소박하고 아름답게’는 아내와 함께 결혼을 준비하면서 만들었던 글귀입니다. 이 글귀들이 의미하는 것처럼 저는 그리스도인답게, 인간답게, 바르게, 자연스럽게 사는 삶에 대한 소망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소위 말하는 직장생활, 사회생활, 도시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그 곳에서의 삶이 제가 오래전부터 바라고 준비해온 삶과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었으며, 또한 앞으로 제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삶을 일궈가기에도 너무도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여기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를 알게 되었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여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새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몇가지 다짐을 하였습니다. 같은 말이겠지만 기왕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ㅇㅇ하고 싶다’라는 말보다 ‘ㅇㅇ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명확하고, 저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성서를 꾸준히 읽고 배우겠으며, 이것을 저의 가장 큰 공부로 삼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잘 사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땀 흘리고 일하면서 제 손으로 자립하며 사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곳에서 2년을 지내면서 하나님과 자연과 이웃을 사랑하는 건강한 농부로, 더불어 사는 마을일꾼으로 탈바꿈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에게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자 동시에 큰 디딤돌입니다. 이들을 기억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2008.03.03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 8회 입학생 최문철.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의 입학식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너댓번의 입학식과는 전혀 다른 형식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지는 내용들도 하나하나 참하고 귀한 말들로 채워지는 것이 정말 색다르면서도 풀무학교 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순서중에는 입학하는 열세명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이야기하는 시간도 있었고, 마을 주민들과 재학생, 수업생, 교직원들도 돌아가면서 모두 한마디씩 이야기하는 시간도 있었다. 물론 ㅇㅇ장님 몇 분의 인삿말도 있었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들도 일반적으로 흘려 듣게 되는 인사치레 말들이 아니었다. 정승관(교장)선생님의 이야기 중에-교장선생님이 입학식을 시작하기전에 쓸쩍 나오셔서 칠판에서 '교장'이란 글자를 지우셨다- 기억에 남는 말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여러분들이 풀무의 50년을 대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풀무의 50년은 여러분을 통해 드러날 것입니다.' 결코 가볍게 흘려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입학식에서 부른 찬송가도 기억에 남아 아래에 적어본다. 같이 입학한 재혁군의 말에 의하면 죽기를 결심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같았단다.
521. 어느 민족 누구게나 1.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2.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 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 날까지 서리라 3. 순교자의 빛을 따라 주의 뒤를 좇아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새 시대는 새 의무를 우리에게 주나니 진리 따라 사는 자는 전진하리 언제나 4.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 주시리 아멘
머리에, 가슴언저리에 와닿은 이 한구절 한구절이 이곳 풀무에서 2년을 지내는 동안 내 손끝과 발끝까지 깊이 새겨지길 간절히 바란다.
 1,2학년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아내와 여름이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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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8일, 스물아홉날의 문철군이 2005년 한 해동안 책임져야할 결정▶을 내렸다.
그로부터 한 길을 걸은지 어느새 3년.
내년에는 벌써 서른둘. 어느새 내가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나이를 앞두고 있다. 2008년을 두달 앞 둔 시점에서, 2년동안 아니 그보다 좀 더 오랫동안 문철군이 책임져야할 결정을 내렸고 마침 오늘은 풀무학교 환경농업전공부에서 합격통지를 받았다.
수영이와 결혼하면서 했던 약속▶을 따라, 아내와 함께 하나님이 주신 귀한 생명의 날들을 책임있는 믿음의 모험으로 계속해서 채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전보다 더 가난하고 행복하게, 소박하고 아름답게.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전공부 지원사유서 more.. ---------------------------------------------------------------------------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환경농업전공부 지원사유서 (간략한 자기소개, 지원동기, 2년간 환경농업과 재학 중 하려고 하는 것, 졸업 후 계획 등)
열쇳말로 풀어본 문철군!
인간 하나님의 형상; [인간 하나님의 형상] 제 세계관의 기초이자, 가장 추천하는 책 제목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글*사진*소리; 글*사진*소리를 전공했고, 앞으로도 평생 '기록과 대화'를 공부하고 또 갈고 닦아 써먹을 예정입니다.
기막힌 영감쟁이; 태생은 기막힌 영감쟁이(ENFP)이나 세밀한 관찰력과 논리적인 사고력을 더해 균형잡힌 통찰력을 가지기를 희망합니다.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단 군종병; 한쪽 가슴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십자가, 진실한 말과 성실한 삶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십자가의 흔적
Lord's Army가족; 기독교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Lord's Army가족의 일원입니다. Psalm 151; 아내와 함께 써내려가는 가는 시편 151편. 1절은 바로 '가난하고 행복하게, 소박하고 아름답게'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저
의 첫 직장은 인터넷 마케팅에이전시였습니다. 첫 사회생활인지라 세상도 배우고, 일도 배우면서 제 한 몫 제대로 해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꼬박 1년을 거의 매일같이 야근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당시에 저의 클라이언트는 과자회사와 게임기회사였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클라이언트를 위해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과자와 게임기를 팔아주는 것이 제 일의 결국임을 깨닫고는, 제가 쏟아 붓고 있는 열심과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웠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물론이요,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가는 것은 제가 그동안 배우고, 추구해온
가치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이 열심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쓰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두번째 일터는 막 새로 시작하는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지원센터였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황무지 같은 상황이었지만, 제 나름대로 1년이란 시간을 정해놓고서 터를 닦고, 틀을 세우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전 직장을
그만두면서 가졌던 바램처럼 나의 열심이 사람에게 직접적인 도움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게다가 대화와 소통도 막혀있는 비민주적인 NPO조직 안에서 일하는 것은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종종 이 일을 그만두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대안도 없이 피하는 것은 능사가
아닌지라, 스스로에게 약속한 1년을 채우고 어느덧 만3년을 넘겨 지금까지 일을 하였습니다. 피하지 않고 버티면서 일하는 동안
해가 바뀔 때마다 안팎으로 새로운 깨달음이 이어졌고, 보다 깊고 넓은 안목과 함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의식과 대안도 모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르게 일하는 것이야말로 결국 사람에게 이로운 일이다.두
번째 일터-NPO에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 중에 하나는 바로 그 추구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 또한
올바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올바르게 그리고 온전히 사람을 돕는다고 하는 것은 돕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서로 건강한 관계 속에서 스스로 돕는 자, 서로 돕는 자로 성장하도록 배려하고 희생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국제구호단체에서 4년을 일하면서 아내가 내린 진단이나, 제가 일터에서 3년을 일하면서 내린 진단은
비슷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표어를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NPO/NGO는 규모와 실리, 홍보효과 등을 앞세워 어떻게든 많은 금전적 후원을 얻어내려고 애쓰고, 그것을
대단위로 유통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뻔뻔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할 줄 하는 위대한 평민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본주의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가난하지
않은, 부유한, 그러나 홀로 서지 못하는 자본의 노예로 굳어지도록 만드는 치명적인 한계를 현 세대 NPO/NGO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저희 부부의 결론이었습니다. 위대한 평민이 더불어 사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저
희 부부가 그런 판단을 내릴 즈음에,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를 만났고, 풀무학교와 홍순명 선생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관심은 어떤 사업이나 운동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음을, 그리고 그 누구보다 저와 제 가정이 먼저 성숙한
평민으로 거듭나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적과 수단이 어긋난 운동, 운동을 위한 운동, 어떤 대상을 향한 운동을 벌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삶과 사회를 성찰하고, 때로는 거슬러 올라갈지언정 순리를 따라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대안적인 삶을 살아내는 위대한 평민이 되어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희 부부가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장기적으로
마을공동체의 경제적인 자립과 정직한 노동의 기회를 골고루 나누기 위해 꼭 필요한 환경농업을 배우면서 평민의 첫발을 내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평신도들이 성서를 읽고 그 정신을 생활에 살리는 새로운 교회들이 많아지고, 인간교육이 이루어지는 지역을 향해 열린 학교, 농업과
공업이 서로 보완하여 다양한 소규모 가공 경제활동으로 협동사회를 실현하는 협동조합 등이 활성화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유기농업을 바탕으로 한 직거래를 통해 도농이 이웃되는 사회, 풀뿌리 지방자치에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사회, 지역문화가
꽃피는 사회, 에너지를 자급하고 엔트로피 증가가 없는 깨끗한 생태마을, 모두가 자발적으로 검소하게 사는 사회, 상호존중과 공정한
거래, 그리고 평화를 바탕으로 한 국제교류의 활성화 같은 이상들이 실현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_269p 홍순명선생님이
들려주는 풀무학교 이야기' 저는 앞으로 2년간
환경농업과에서 공부하는동안 지금 머리 속에서 옳다고 여기고 있는 위와 같은 마을의 모습이 다음세대를 위한 진정으로 바람직한
대안임을 가슴깊이, 온몸으로 다시 한번 깨닫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을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손과 발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한마을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갈 이웃을 만나고도 싶습니다. 아울러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2년이 지난 이후로 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위와 같은 마을의 모습에 한 두가지
더 보태서-아이와 노인과 장애인과 이주민을 비롯한 모든 마을사람들이 함께 땅을 일구며, 고루 가난하고 행복하게, 소박하고
아름답게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 주민의 한사람으로, 평민으로 녹아지는 것이 제 졸업이후의 계획입니다. ▶ 그동안 제가
살아온 모습과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고민, 또 앞으로의 삶을 위한 다양한 생각들을 저의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서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www.waterclimber.net & www.waterclimber.net/blog2008년 11월 6일 지원자 최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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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8일~9일 아내와 함께, 젊은 청년들과 함께 홍성 문당리에 다녀왔습니다. 마을도, 학교도, 그리고 사람들도 정말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일상의 자잘한 선택들이 예기치 못했던 결과와 만남들을 이어주며 흐릿하게나마 어떤 굵직한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볼 때, '이 흐름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인가보다'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홍성 문당리와 풀무학교에 다녀온 것도 역시 그 굵직한 흐름속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흐름이 또 어디로 이어질지 지금은 알 수 없겠지만,
인도하시는 손길에 감사하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따라가려고 합니다.
+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바로가기▶ www.poolmoo.or.kr + 풀무환경농업전문과정 바로가기▶ www.poolmoo.net + 충남 홍성 문당환경농업마을 바로가기▶ mundang.invil.org
+ 사진은 피카사 웹 공개 앨범으로 연결됩니다. 본인의 사진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은 말씀해주세요. 물론 원본-큰 사진을 원하시는 분들도 말씀해주시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 홍순명교장선생님의 이야기 more.. -------------------------------------------------------------------
* 홍순명교장선생님은 일방적인 강의방식이 아니라, 문답식으로 이야기들을 풀어주셨습니다.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2007년 6월 8일 오후 9:03:36~
교육 > 헌신으로 이어져야합니다. 예) 피아노를 잘 치는 나치학살자.
Q.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A. 자아실현 &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기여.
* 예수님도 교육자셨다. 랍비, 훌륭한 선생님. - 게바라는 이름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베드로에게 반석이라는 이상-도달할 수 있는 이상을 심어주셨다. - 나다나엘; 나라를 생각하는 나다나엘을 이해해주셨다. - 다양한 사람들을 교육하시는 방식 > 같이 이야기하고, 생활도 하고, 비유도 들고.. -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능력에 맞는 교육법을 행하심.
* 지식은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정신이다. 팩트 & 가이스트 러스킨; 역사에 있어서 정의의 법칙, 경제에 있어서 평등의 법칙, 수학에 있어서 합리적인 법칙, 소수자에 대한 배려등. 이 말을 들은 간디 >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경제'라는 힌두 말을 만들어 냄.
전경련이 만든 교과서에는 과연 그런 정신이 들어있을까?
성경을 얼마나 교육에 도입하는가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질만큼 성경은 교육에 매우 이로움.
자유스러운 경건; 틀에 얽매이지 않은 경건.
헌신으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교육이 완성될 수도 없고, 사회 변화;사회에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
Q. 교사가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나요? A. 교사가 아무리 학생들보다 책을 더 읽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그렇지 안아요. 콤퓨타시대가 왔잖아요. 인격이 훌륭하니까 나를 본받으라, 군사부일체다 라고 하는 것도 너무 경직되게 만든게 아닌가 싶어요. 제일 좋은 선생님은 어머니라고, 나도 공감합니다. 선생님들보고 어머니들의 1/4만 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2년만에 모국어를 가르쳐내는 어머니의 실력을 보세요!
백골이 진토되어... 신하가 임금을 위해서, 임금이 백성을 위해서(그런 말은 없는듯.. 이런이런..)
나를 보라. 완벽한 사람을 보라 > 정직한 교사는 아닌 것 같아요. 위선이죠.
교사는 무엇을 해야하느냐. 교사는 학생과 함께, 진리의 동반자, 같이 자라가는 존재. 아무리 작은 어린아이도 자기만의 인격과 감성을 가지고 있다.
달라진 베드로, 달라지기 전의 베드로. 누가 진짜 베드로냐? 달라진 베드로가 진짜 베드로인거에요. 예수님을 만나서 달라진 베드로.
교사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너무 권위적이지 말았으면 해요. 방법을 알려주고, 격려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공부를 해서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지식은 작은 악마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일본의 어느 학교 대문에 써있는 말.)
* 교사론... 가만두면 잘 걸어갈 것을 갔다가... 쓸데없는 지식도 세상에 많아요. 작은 것이, 단순한 것이, 기본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어요. 교사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짚어봅시다.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아요. 어려운 거에요.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움직이게 하는... 기본적으로 애정이 있어야죠. 자기의 무지를 감추려고 해서도 안되구요.
완전히 외워야할 것도 있지만, 나머지는 다 이해하며 밝혀낼 수 있는거에요.
팀으로 공부하기(경쟁이 아닌) 지식의 단편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기 지식을 가지고 사회속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 역할도 밝혀내는...
Q. 교장의 역할은? A. 생태계에는 권위적인 것이 없어요. 교사들을 평가하는 교장.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교통소통을 하는 역할. 젊은 교사를 격려하는 역할.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보다 한번 더 생각하는, 학교와 학생의 미래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한사람이 여러해 하는 것보다, 지치니까 돌아가면서~
점수로 평가하기, 문장으로 평가하기. 학생이 선생을, 학부모가 선생을 평가하라;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니까...
Q. 학교와 지역사회와의 관계 A. 요즘엔 학교와 지역이 별로 관계가 없어요. 정상적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학교는 지역에서 외딴 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한정이 되어있습니다. 지역이 바로 살아있는 교실입니다. 교과서에 있는 메뚜기는 가만있지만, 교과서밖에 있는 메뚜기는 뛰어다닌다고 해요. 학교는 지역의 일부분입니다. 넘나들어야합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는 지식만 가르쳐도 됬어요, 왜냐하면 지역이 관습, 관계, 문화를 가르쳤으니까요,. 근데 요즘에는 지역이 그것을 가르치지 못해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들이 많아졌어요. 근데 그렇다고 제대로 가르쳐치지도 못해요. 다시 지역이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해요. 학교와 지역은 하나에요. 하나가 되어야해요.
미국. 뚜이; 교육은 경험의 연속; 지역사회 전체를 교재로 활용하기 - 전인적인 교육을 가능하도록.
전공부 학생들이 지역을 통해서 공부하고, 지역에 남게 된다면 아주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3가지가 없는 학교. 시험이 없는 학교 교사와 학생이 구별이 없는 학교 - 함께 배우는 학교 학교와 마을사이에 울타리가 없다 - 우리학교
대안학교에서 전공까지 연결되야해요. 교양과 실천력을 가진 사람. 나중에는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지역교육.
서당의 모양; 작은 학교, 민간학교, 교양을 중시한 학교, 실학 > 지역을 살리는 학교. 지역을 변화시키는 학교; 낙향
* 의사와 농부. 아픈사람을 고치는 의사,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려주는 농부.
* 지속가능한 사회, 농업 순환체.
* "교양과 실천력"
* 공동체에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물과 같이 이어지고, 개선하며.
* 어느 순간부터 지역사회와 함께 농사를 지으셨나요?
* 제가 전국귀농학교 교장인데, 수료증주는 기계에요 ㅋㅋ
Q. 귀농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A. 도시에서 배운 것을 내버리지 마라. 빈집, 빈땅을 찾아가지 말고, 땅이 없어도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라 친구들과 함께 가라. 나 혼자는 불가능하다. 1~2년 안에 끝장을 볼려고 하지말고, 적어도 10년은 바라보고 살아라. 그러는 동안, 핵심이 되고, 밀알이 되서 변화를 일으켜라.
Q. 선생님은 어떻게 여기에 정착하게 되셨나요? A. 23살, 군대마치고, 젊으니까 앞뒤안제고 왔어요. 젊으니까 ㅎㅎ
그런데 나이가 젊어도 현실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비전과 꿈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근데 그게 진짜 젊은이죠.
한 때 떠들썩하지만, 오래가지 않는 것에 투신하지 말고, 오래가는 것에 야망을 품어야 합니다. 클라크>Boys be Ambitious.
* 로마클럽 왈. > 이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비전을 가져야한다. 그물망을 짜야한다. 네트워커. 진실을, 사실을 말해야한다. 배워야 한다. GMO가 뭔지, 사스가 뭔지.. 학교에서도 배워야하고, 시민들도 배우고 알려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파멸에서 살아남을려면 사랑해야한다. 생명을, 인간관계를 사랑해야한다.
수단, 다르푸르. 1,800원짜리 화덕이 없어서 열흘에 한번 갈꺼 사흘에 한번 나무하러가다 봉변을 당하는 것.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이 마을의 빈부형태, 땅의 소유형태 A. 농촌은 빈부차가 별로 없어요. 90%이상이 농민인데, 대지주가 없어요.
토지정의와 전쟁, 내란. 내땅이다, 그래서 지킨다. 빨리 토지공개념을 실현시키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주체적인 국민. 신뢰하는 사이. 표정도 밝아지고. 여기는 토지의 불균형은 없는데, 도청이 들어온다고 해서 땅값이 올라가요. 그건 좋은게 아닌데... 귀농하려는 이들이 농사짓고 싶어도 땅이 없어요.
토지공사에서 귀농자에게 땅을 되팔아줬으면 좋겠는데....
평등, 인도주의정신 그리고나서 자유. 그게 진짜 민주주의. 여기서 평등은 토지관계가 아주 중요해요.
이오덕선생님이 과천사무실을 창천동으로 옮기면서 남긴 차액을 기증해서 풀무학교 땅이 생겼어요. 농사를 지을려고 하는데, 땅이 없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됩니다.
교육의 기본, 본질, 원칙을 추구해보자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1995년 대안학교에 대한 토론을 시작 : 처음엔 네군데 :민족사관학교, 거창학교, ~, 풀무학교. 근데 지금은 인가 비인가 합쳐서 100개를 넘겼다고 합니다.
대의민주주의가 사람을 망친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하는게 좋은거 같어. 음. 그래.
생명과 평화도 성경적인 생각이에요. 개인을 완성하고, 공동체를 성장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생각이에요.
졸업생들이 지역에 나가고, 이어지고 연결되는데 20년정도가 걸렸어요.
Q. 선생님이 알고 계신 곳중에, 학교와 지역이 잘 연결되어있는 마을 또는 공동체가 있다면 몇군데 소개해주세요. A. 글쎄요... 가서 수고하고, 애쓸 곳은 많이 있어요. 그런데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금방 몇 년안에 뭘 할라고 하지 말고, 어디가서든 20년만 수고하고 견디면 다 되요.( 참고로 선생님은, 지금 이땅에서 50년을 투자하셨다.)
------------------------------------------------------------------- + 수고해준 영준군 & 예비 제수씨 고마워요~ 그리고 결혼 축하해요~
+ 영준이의 초청글 more.. 사는 곳에서 그사람의 이야기를 들을때 , 맥락속에 담겨있는 무수한 얘기들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교실에서 보다, 그 사람의 생활 무대에서, 배움은 "머리"로 만이 아닌 "몸"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겠죠? 저는 요즘 "마을"에 관심이 많습니다. 마을은 "문화"를 담지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마을은 별다른 독특한 면이 없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녀 봐야, 똑같은 아파트에,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구조 밖에 없습니다. 아마 이런사람들은 마을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을은 삶을 나누고, 함께 가꾸고, 고통과 슬픔을 나누는 곳이겠지요. 또한, 마을은 함께 배우는 공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화를 거치면서 "관계"가 단절되면서 마을이 가지고 있던 이런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 버린듯 싶습니다.
관계가 회복된 마을은 "배움"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을이 세상의 질서와 다른 "평화의 질서"로 이루어 져 있다면 말이죠.
세상의 질서가 지배하는 마을은 "입시의 게임"을 하느라 바쁘게 살지만 "평화의 질서"가 지배(지배한다는 표현도 어색하네요)하는 마을은 "배움의 게임"을 하느라 즐겁습니다.
우리 아름다운 마을이 그런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에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훌륭한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홍성에 있는 문당리" 마을입니다.
50년간 그 마을을 키워온 것은 "풀무학교"였던 것 같습니다. 풀무학교는 마을의 학생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까지 품으며, 마을을 가꾸어 갔습니다.
세속의 질서로 어지럽히지지 않는 "철학과 감동"이 있는 마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마을은 "교육의 본질"의 터 위에 세워진 학교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문당리 마을은 적어도 그렇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홍순명 교장선생님은 의미추구와 가치추구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일까요? ^^ 함께 알아보러 가요.. ㅋㅋ
"마을, 공동체, 교육" 란 주제로 강의도 부탁드렸습니다. 50년간의 삶을 담보로 힘있게 말씀하시는 "홍순명 선생님"과의 만남 너무도 기대됩니다. 6월 8일 부터 9일까지 1박 2일간 ... 함께 하실분은 저에게 연락 주세요 .. 원본링크 : http://club.cyworld.com/club/main/club_main.asp?club_id=5120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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